길가에 참나무 한 그루가 있었다.

 

숲을 이룬 자작나무들보다

열 배는 더 오래 살았을 그 나무는

여느 자작나무보다 열 배는 더 굵고 두 배는 더 컸다.

 

두 아름 정도 되는 거대한 참나무는

오래전에 꺾인 듯한 큰 가지들과

묵은 상처로 뒤덮이고 갈라진 나무껍질들이 보였다.

 

울퉁불퉁한 거대한 팔과 손가락을

볼품없이 비대칭으로 벌린 채

참나무는 생글거리는 자작나무들 사이에서

늙고 성마르고 남을 업신여기는

추악한 인간처럼 서 있었다.

 

오직 참나무 하나만이

봄의 매력에 복종하지 않고,

봄도 햇살도 보려 하지 않았다.

 

전쟁과 평화 2 / 레프 톨스토스 / 민음사 / P.311

 

1.

1805년 나폴레옹이 오스트리아와 러시아 연합군을 상대로

큰 승리를 거둔 아우스터리츠 전투와

1812년 나폴레옹이 몰락하는 계기인 러시아 원정을 겪는

여러 인물을 대한 이야기.

 

작가가 러시아 사람이니

주로 러시아 관점으로 전투와 그 시대를 기술하지만 

러시아가 옳다 / 러시아는 위대하다는 관점보다

그 시대을 살아가는 여러 사람들의 모습을 묘사하는 것에

주력하는 소설이다.

 

나폴레옹과 당시 러시아에 관한 배경지식이 있다면

그나마 읽을만하나

나처럼 전혀 아는 바가 없다면 

전쟁와 그 당시 시대상을 주로 묘사하는 1권 / 4권은

계속되는 하품과 함께 꾸역꾸역 책장을 넘기는 일만 남는다.

 

결론은 안나 카레니나를 추천한다.

톨스토이에 대한 애정 & 근성으로 겨우 읽었다.  

 

2.

작가는 역사를 기술할 때

우리가 주로 관심을 갖는 황제 / 장군과 같이

어느 집단을 대표하는 사람들에만 집중하지 말고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면면을 통해 

무수한 인간들의 의지에서 흘러나오는

연속적인 인류의 운동을 표현해야 한다는 입장을

책 전반에 걸쳐 지속적으로 강조한다.  

 

전쟁과 평화가 관심 있다면 3권 3부 1장을 먼저 읽어보자.

 

다른 곳에도 비슷한 내용이 많이 나오지만

미분 / 적분 / 무한소 / 기하급수와 같이

공대생을 자극하는 다양한 수학적인 표현과 함께

역사에 대한 그의 생각이 집약적으로 기술되어 있어

유난히 기억에 남았다.

 

3.

위의 내용은 안드레이 볼콘스키 공작이

로스토프 백작을 만나러 가는 장면이다.  

 

저 장면 이후로 소설이 흥미진진하게 전개되어

더욱 기억이 많이 나는 장면.

 

2권부터 안드레이 이야기가 가장 재미있으나

3권에 고구마 한상자

4권에 헉... 뭐지 이 전개?

하고 끝난다.

 

안드레이에 대한 결론이 맘에 안들어서

전체적인 소설에 대한 인상이 나쁠지 모르겠으나

일단 러시아에 대한 배경지식이

너무 많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4.

여행을 갔다오면 / 산을 오르고 나면

그 과정에 좋은 기억은 모두 사라지고

몇몇의 기억만 남게 된다.

 

많은 시간이 지나고 나면

희미한 그러나 결코 잊혀지지 않은

몇몇의 기억만 남기 마련인데...

그런 기억을 갖기 위해 여행을 가는 것 같다.

 

길게보면 3개월 동안 읽은 책이다.

 

개인적으로 요새 바쁘기도 하고

책 자체가 어렵고 책장을 넘기기 어렵기도 하고

여러모로 쉽지 않은 책이었다.

 

책장을 넘기는 행위가 

"다시 한달을 가서 설산을 넘는" 느낌의 책이었다,

 

좋은 기억도 별로 남지 않고

나쁜 기억도 별로 남지 않은

희미한 기억만 남은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