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문화에 심취한 것으로 유명한 두 로마 황제의

관심사가 달랐던 것은 흥미롭다.

하드리아누스는 주로 조형예술에 관심을 기울렸지만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철학에만 관심을 쏟았다.

하드리아누스에게는 '아름다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에게는 '진리'가

관심의 핵심이었을 것이다.

아름다움도 진리도 그리스 문화의 최종 목표이기는 했지만.

 

로마인 이야기 11 종말의 시작 / 시오노 나나미 / 한길사 /  P.232

 

1. 

여행을 다니면서 책을 들고 가서

오롯히 한권을 다 읽은 것은 처음이다.

특별히 상세한 계획이 없이 다녀온 여행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책의 내용이 재미있어서 그랬던 것 같다.

 

2.

11권은 오현제의 마지막이자 파토스로 인생이 가득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와 그의 아들 콤모두스를 거쳐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까지의 이야기를 다룬다. 

 

제일 유명한 사람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니깐

가장 책의 비중도 많고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황제라서

더욱 재미있게 읽은 것 같다.

 

3.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만큼 열심히 사색하고 공정하려 애쓴 황제도 드믈다

명상록을 쓰기도 했고 명상록에는

"사람은 사색에 몰두하고 싶을 때면 한적한 곳에 틀어박힌다.

시골에, 해변에, 산 속에.

그대도 옛날에는 자주 그것을 꿈꾸곤 했다.

하지만 그것은 어리석은 해결책이다.

정말로 자신의 마음과 대면할 필요를 느낀다면

언제 어디서나 자신의 내면으로 도망쳐 들어갈 수 있다." (P.214)

라고 이야기할 만큼 먹물향이 가득하고 책임감도 투철했던 황제.

 

결국 전쟁터를 떠돌면서 제국의 방위에만 열중하다

제2차 게르마니아 전쟁 2년차 겨울 숙영지인

빈(빈도보나) 에서 죽음을 마주하게 된다.

 

4. 

누구보다 철학적이고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던 황제이나

그의 아들 콤모두스는 누구보다 무능했고 결국에 암살 당한다.

이후 몇 명의 사람들의 짧은 제위를 거쳐 세베루스로 정리되나

세베루스의 아들도 그 유명한 카라칼라 이기 때문에

능력 좋은 아버지의 무능한 아들이라는 점에서는 

아우렐리루스와 세베루스도 공통점이 있다.

 

하드리아누스의 순행으로 마련된 안정된 사회가 

피우스를 거치면서 모든 역량이 소진되었고

아우렐리우스는 그것을 어떻게든 꾸역꾸역 유지하려고 노력했지만

결국 그의 죽음 이후에 모래성이 무너진 느낌.

 

운명이라고 하기엔 노력한 것에 비해 가혹한 결말 같아  

왠지 모르게 마음이 가는 황제이다.

 

나는 물잔의 물을 반 밖에 남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니깐.

 

5.

1월의 태국은 적당히 덥고 비도 오지 않아 너무 여행하기 좋았다.

방콕에선 친구를 봤고 끄라비에서는 피피섬도 보고 락 클라이밍도 했고.

 

끄라비는 너무 평화로운 동네라서 기분이 묘했다.

내가 한국에서 뻘짓거리하면서 힘들어 하고 있을 때에도

이 곳은 항상 이렇게 평화롭겠구나.

우크라이나에서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어도

이 곳은 계속 평화롭구나.

 

그 곳에서 찍은 사진을 지금 봐도 매우 아름답지만

그 당시엔 내 마음에 오롯이 들어오지 못했고

온전히 그것을 즐기지는 못했다.

 

6.

끄라비에서 락클라이밍을 할 때마다 

떨어지지 않으려도 바둥바둥 거리면서 위로 올라가는 것이

일종의 인생을 은유하는 메타포 같아서 기분이 묘했다.

 

많은 사람들이 줄 하나에 의지해서

큰 절벽에 아둥바둥 매달려 있는 것도 굉장히 기괴한 장면이었다.

 

Bottom 과 Top 사이 어딘가에서 매달려 있는 것을 보면

어딘가로 떨어지지 않으려 노력하는 나의 인생 같았다.

 

7.

끄라비,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락클라이밍. 사랑의 이해. 헤어질 결심.

 

이번 여행에서 가거나 보거가 읽었던 것들이다.

상당히 아무 연관이 없어 보이는 것들이지만

나에게는 묘하게 연관이 있다.

 

저 모든 것이 나에겐 

이도저도 아닌 상태거나...

이도저도 아닌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 같다.

 

결국 어딘가 선이 있고

그 선에 대해 계속 고민하고

그 선을 넘거나 넘지 않으려

아둥바둥 애쓰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같았다.